영화 감상문

흔들리는 도쿄

blueshirt 2018. 4. 13. 13:45


한 편의 시 같았던 영화.
영상으로 보여주는 은유를 알아챘을 때 그 순간부터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 / 2008년 10월 23일 개봉. 

아는 형의 추천으로 <흔들리는 도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마 곧 도쿄로 여행을 갔다 오지 않을까 싶은데, 갔다 오기 전에 꼭 한번 보고 가라고 하여 보게 되었다. <흔들리는 도쿄>는 '도쿄!'라는 영화의 한 옴니버스 에피소드 중 하나로, 상영시간은 대략 30분이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있지만, 일단 이 영화만 봤다.

영화 내용은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자 배달원을 사랑하게 된 히키코모리의 이야기이다. 11년 만에 눈을 마주친 사람이 피자 배달원이다. 그녀가 다시 보고 싶어 피자를 주문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오면서, 그녀의 근황을 묻게 된다. 그녀도 히키코모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주인공은 그녀를 만나러 간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보다도 나는 연출이 더 눈에 띄었다. 연출과 구성이 영화를 한 편의 시 같이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두 번을 돌려보게 되었다.

1.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영화가 보여주는 10년 차 히키코모리의 삶은 단순하다.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이 전부다. 시점의 줌인(Zoom-in), 줌아웃(Zoom-out)으로, 타임머신 타듯 시간을 잘라먹기 하는 것이 일상의 단조로움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가령 피자를 다 먹은 주인공의 얼굴을 줌인 할 때, 그의 등 뒤에 있는 피자 상자들은 그의 앉은 키 정도 쌓여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줌 아웃을 하니 피자 상자들은 그의 키를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10년 차에서 11년 차 히키코모리가 된다. 이외에도 여러 짧은 시간대를 영화 초반에 자주 잘라먹는다.
주인공이 피자 배달원과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11년 만에 눈을 마주쳤다' 라는 말을 한다. 그의 감정은 동요를 일으키고, 집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일본의 지진이 그의 감정을 대변한다는 것도 재밌었다. 집이 흔들리면서 잘 정리된 물병과 책, 휴지 심들이 흔들거리고 무너지는데, 마치 금이 가는 것처럼 그의 견고했던 히키코모리 삶을 흔드는 것 같았다. 감정의 동요가 그의 히키코모리 삶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고 이해해도 될 것 같았다.
피자 배달원이 의식을 잃고, 주인공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피자 배달원의 허벅지 아래에는 전원기호와 'coma'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보기도 하고, 어떻게든 의식을 깨우려고 한 주인공이 그 버튼을 누르자 그녀가 깨어난다. 

왜 굳이 버튼이 있었을까. 이것도 어떤 연출적 요소일까?
버튼이 참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저기 있는 것일까. 버튼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피자 배달원에게만 있다. 저 영화 속 세계에서 버튼은 왜 피자 배달원에게 생성된 것일까? 처음 봤을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두 번 보니, 피자 배달원에게 있는 버튼들은 모두 그녀 자신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히키코모리가 된 그녀를 그가 찾아냈을 때, 그녀의 손에는 붓이 있었다. 영화 초반 지진 때, 쓰러져있던 그녀가 의식을 되찾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진짜 coma 버튼을 눌렀는지 물어보는 것과 엄지손가락 마술이었다. (그 엄지손가락을 분리시켜버리는 마술) 참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영화 초반, 지진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것도 사실은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장난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11년만에 집 밖을 나온 주인공.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다.

그녀가 보고 싶어 다시 피자를 시켰을 때, 그는 그녀가 히키코모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는 방법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는 집 밖을 나가기로 다짐 한다. 나는 그가 집 밖을 나왔을 때의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든다. 카메라 조리개를 과다 노출시킨 것 마냥, 매우 눈부시다. 흰옷은 그의 윤곽을 흐리게 할 정도로 밝게 빛난다. 집에 11년간 있다 나오면 정말 저럴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 우리 눈이 마치 밝음에 적응하듯 눈부심은 줄어든다. 나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가 바라보는 집 밖을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 '피자 배달원을 만나러 가자.' 라고 다짐하는 그의 뒤에는 수풀로 뒤덮인 집이 있다. 피자 상자보다 11년의 세월을 극명히 보여준다. 

그가 가는 곳은 다이자와 3번지이다.

주인공은 걱정되지만, 기대되는 마음으로 달린다. 그러나 이내 달리는 도중 깨닫게 되는데 거리에 사람이 없다. 모든 집이 수풀로 우거져있다. 피자는 로봇이 배달한다. 일본 도쿄의 모든 사람들이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주인공이 이를 깨닫게 되었을 때, 햇빛은 그늘막 너머로 숨어버리고 주인공에게는 쨍쨍한 햇빛 대신 그늘만이 드리운다. 나는 이 장면이 마치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에게 햇살과 그늘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와 도로를 달려 다이자와 3번지에 도착한다. 창문 너머 모든 사람들이 그가 겪은 히키코모리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은 손바닥에 휴지 심으로 원을 새기고 그 원이 얼마나 오래갈지 독백한 적이 있다. 이제 그의 손에서 휴지 심은 흐릿해져만 가는데, 창문 너머 사람들은 휴지 심을 찾아 휴지를 둘둘 풀고 있다. 그렇게 그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한다. 막 히키코모리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 6년 전 자신의 모습, 1년 전 자신의 모습.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이 히키코모리가 되고 1년간 편지를 보냈던 적이 있다. 아마 그 편지는 '집에서 좀 나와봐라.', '보고 싶구나', '잘 지내니' 이런 류의 글이었을 테다. 그렇게 아버지의 편지에는 물론, 자신 스스로도 꿈쩍하지 않다가, 1년, 5년, 10년 동안 집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타인을 통해 발견한 것이다. 그의 눈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힘들고 절망적인 눈이었다.

결국, 그는 다이자와 3번지에서 그녀를 찾는다. "제발 나오세요. 지금 나오지 않으면 평생 못 나와요."라고 간절히 외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 문을 굳게 잠근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그의 심정을 반영하듯 지진은 이전보다 훨씬 크다. 지진이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밖에 나와 있었다. 그는 다시 집에 들어가려는 그녀를 붙잡는데, 붙잡은 오른손의 검지가 Love라는 버튼을 눌렀고, 영화는 '흔들린다.'라는 그녀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지진 소리로 끝이 난다.
 대화는 사람의 지식과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대화하면서도 오해를 일으키고, 서로 언어가 다르면 대화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감정들로 이름 붙여진 그녀의 버튼들은 사실 그녀가 감정을 전달하는/전달받는 대화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눌렀다.'라는 단순한 대답과 함께 버튼을 누른 그는 그녀에게 그녀만의 대화 방법을 이해해준 첫 번째 사람일 수 있겠다. 영화는 멀리서 지진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제 그의 지진이 아닌 그녀의 지진으로 끝이 난다.

좋은 영화였다. 길지 않아서 쉽게 집중할 수 있었고, 마음에 와닿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본 영화는 학교 내 도서관 멀티미디어플라자 영상자료를 통해 시청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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