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Still Life

blueshirt 2016. 9. 12. 02:35

 

Still Life

93분 / 영국, 이탈리아 / 2014.06.05 개봉


대화가 많이 없다. 14년도에 개봉한 유성영화임에도, 특히 초반은 무성영화 같은 느낌이 들 만큼 대화가 없다.

영화는 런던의 한 구청 공무원 이야기를 다룬다. 아파트에서 홀로 죽은 사람. 죽은 지 몇주가 되어서야 이웃들에게 발견되는 사람. 주변에 아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뤄주고 추도문을 작성해주는 공무원. 존메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였다. 생각해보니 22년간 죽은사람들과 일을 보낸 주인공인데, 죽은 이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무성영화 같은 느낌이 들 법도 하였다.

오늘 하루 집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꺼진 TV만 바라보다가 무언가 담담함을 느끼고 싶어서 선택하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 자체는 미지근해진 녹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향이 나는데, 차가 식어버리면서 남은 향이 많이 날아가 지금은 담담한 맛이 얼추 남아있는 기분. 보는 내내 기분은 그런 담담함이 상당했는데, 다 보고 난 후 나는 꽤 멍해져 있었다. 내가 멍해진 기분은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서 더욱 심해졌는데, 첫째는 영화의 장면들과 색깔들. 둘째는 영화를 다 보고 알게 된 제목의 의미 때문이었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본다는 기분이 잘 들지 않게 만들었다. 어떨 때에는 그림을 보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자동차도, 사람도 모든 사물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지된 사진을 보는 기분이기도 하였다. 주인공이 과일을 깎는 장면에서, 사진앨범을 덮고 스탠드 전등을 끄는 장면에서, 밥을 먹기 위해 통조림을 얹힌 그릇이 식탁 보 위에 놓여져 있는 장면에서, 보면 볼 수록 정지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존메이가 죽은 사람들의 문서에 "CASE CLOSED"라고 적을 때에도, 더욱 그런 기분이었다. 딱 영화의 장면도, 그 사람의 시점도, 끝 혹은 정지 되어 흘러가지 않는 기분.

Still life란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영화가 끝나고 찾아본 Still life의 의미는 우리말로 '정물화'라는 뜻이었다.'정물화'란 '자연적 환경과는 동떨어진 장소에 움직이지 않는 (죽은) 대상 - 화초, 과일, 죽은 고깅와 새, 악기 책, 식기들을 그린 그림' 이라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살아있는 생물도 나오기는 하나 주로 들러리로 그려진다고 한다. 정물화라는 것을 한시간 반이라는 움직이는 장면들속에 담아낸 것이 놀랍다. 제목을 모르고 봤더라도, 내가 정물화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으면, 무엇보다도 정물화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죽은 한사람을 위해 살아있는 여러 사람들이 무덤 옆에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꼭 마치 그림의 대상 옆에 있는 들러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저냥 영화를 보다가 중반즈음까지 해서 생긴 궁금증이 하나 있었는데, "왜 주인공은 기차를 역행으로 타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항상 런던에서 떠날 때도 기차는 주인공의 등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달리고, 런던으로 돌아올 때에도 기차는 주인공의 등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달린다. 영화 후반 즈음가면 무언가 행복한 결말이 눈에 보일 듯한 느낌을 풍길 때가 온다. 이때 주인공이 탄 기차의 방향을 보면 정방향이다. 기차가 주인공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달리는데, 이조차 의도된 것일까. 중반까지 넥타이를 꽉 조이던 주인공이 후반부에 넥타이를 메지 않는 것 또한 의도된 것일까. 뭔가 작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오랜만에 꽤 보기 편안한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의 대화를 일일이 따라가지 않아서도 좋았고, 그냥 바라만 보는데도 담담해지는 기분이어서 좋았던 영화였다.

*본 영화는 올레티비 무료영화로 시청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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