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을 읽고

blueshirt 2020. 2. 29. 23:02

한 걸음 떨어져 과학 바라보기
한 걸음 들어가 과학 바라보기

홍성욱,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융합시대의 과학 문화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표지

나는 정말 과학이 좋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과학의 이미지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경제발전의 주역인 ‘과학'기술의 ‘과학’ 일 수도 있겠고, 이성과 논리, 지식의 집합체 라는 인식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중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누구든 기존의 지식에 질문할 수 있고, 누구든 ‘과연 맞는 지식인가? 더 나은 방안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에 상대성원리로 도전한 아인슈타인이 그러했고,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가 그러했다. 혹자는 이를 과학혁명이라고도 칭하는데, 이는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우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이들과 스터디를 할 때면 교과서에 나열된 수식들과 이론들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각자 개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과학혁명을 해나가는 중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과학한다'라는 말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누구든 질문할 수 있고 틀릴 수 있는, 열려있는 분위기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의 이런 매력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런 ‘과학'이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오래오래 널리널리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고민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멀리 보면 종교로부터 탄압받던 시절도 있었고, 가깝게는 환경파괴, 전쟁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반-과학 분위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학생으로서는 어려움 대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내쳐져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려있는 분위기의 ‘과학'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과학'은 우리네 삶에 실질적으로 지금보다 유용하다는 얼굴을 갖춰야할 것이고, 다른 분야의 학문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그 유용한 쓰임새를 증명해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이 타 분야 학문, 그리고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융합시대의 과학문화”는 과학이 어떻게 다른 학문과 상호작용을 맺고, 문화로서의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에서는 과학과 우리 삶 사이에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과학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데, 저자는 과학을 일종의 지식 체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활동으로 바라본다. 이로써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예술, 과학과 건축, 언어, 젠더 법 등 우리 삶을 이루는 큰 줄기들 사이에서 과학이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흥미로운 예시를 다양하게 들어 살펴보는데, 가령 과학과 예술 파트에서는 영국의 화가 존 컨스터블을 예로 든다. 존 컨스터블은 눈부신 석양을 캔버스에 어떻게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색깔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가장 석양과 근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것이 이 책이 2008년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이다. 06년도 ‘인문학의 위기’가 화두되면서 인문학이 본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지났을 14년 후, 20년도에 들어와 인문학의 위기가 극복되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닐 듯 싶다. 심각한 것은 자연과학도 이제는 ‘자연과학의 위기’를 외치고 있다는 것인데, 울산과학기술원에 재학 중인 내 학우는 올해 물리학 전공 트랙을 선택한 학생이 단 2명이라고 한다. 타 대학 자연계열 입학생 현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와 전문적인 과학자로 훈련시키기까지 약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니 어쩌면 우리의 과학은 10여년 후 큰 인력난을 겪을지 모르겠다. 

저자의 책머리 말을 인용하자면

 “우선 과학이 자신의 범주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식이나 활동과 맺고 있는 접점과 상호작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과학 문화의 더 의미 있는 비전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데, 문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유지할 사람이 남아 있을지가 걱정된다. 책을 출간했던 시기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융합'은 여전히 유행 중인데, 과연 우리는 ‘융합’을 통해서 과연 각 분야의 학문이 나아갈 활로를 넓힐 수 있었는지, 아니 그 전에 우리가 겪는 이 ‘융합'이라는 것이 저자가 기대했던 비전의 ‘융합'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과학의 여러 얼굴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과학'이라 하면 수식과 이론,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지식의 집합이라는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곤 하는데,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이 책은 그런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과학 활동의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 엔지니어는 홀로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과학자/엔지니어, 그리고 이공계열에서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데, 이는 우리가 공부하고 사용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맥락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타인에게는 어떤 가치로 받아들여지는지 알면 더욱 보람차지 않겠는가?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표지 이미지 출처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