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기 나름인 시대들
주경철, 그해, 역사가 바뀌다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지나간 과거를 복기함으로써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알아야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시대별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누가-언제-어디서를 알면 되는 것일까?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목적을 생각해보건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나열된 사실관계 속에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일 테다. 원인과 결과를 여러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서 연결시켜보고, 하나의 이야기를 짜보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그해, 역사가 바뀐다’라는 책은 이러한 목적을 가진 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인류사의 흐름을 짜임새 있게 설명하고자 했다.
‘그해, 역사가 바뀐다’는 크게 4개의 시대로, 그것도 특정 연도를 언급하며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 1차 산업혁명이 종결된 1820년, 도도새가 멸종된 1914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 중 나는 2강-1820년과 4강-1945년을 읽었다.
느낀 점을 요약하건데, 이 책은 원인과 결과를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서 연결시켜본다는 목적에 너무 충실했다. 초반에는 인과관계가 맺어지는 듯한 이야기에 흥미로웠지만, 결국에는 역사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그저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이 선택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300여 페이지의 짧은 지면에 압축하다 보니 많은 부분들이 생략된 것이겠지만, 그렇게 생략된 내용들은 아마 저자가 생각하는 커다란 틀에 부합하지 않아서 잘려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해석하기 나름인 것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저자가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지 의심이 된다.
1820
저자는 1820년이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갈린 해라고 평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의 GDP가 1820년 경을 중심으로 역전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배경을 15세기서부터 설명하고 있다. 1400년 경 전쟁과 기근, 전염병으로 산산히 분열된 유럽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통합된 중국. 저자는 지형적인 차이가 원인이 된다고 말하는데, 중국은 하나의 대운하가 있는 반면, 유럽은 여러 개의 강이 있어서 통합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문명의 중심지는 강이니, 여러 중심지가 있는 유럽은 여러 국가가 대립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통합보다는 분열을, 내륙 진출보다는 해양진출을 택했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장 구글 지도를 열어서 축척 1cm:50km로 중국과 유럽을 살펴봐도 유럽보다는 중국에 큰 강이 많다.
어찌 되었든 유럽이 해양진출을 택한 계기를 설명을 하고, 저자는 이제 수송수단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해양운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인도양의 특색을 설명하면서, 해양운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막 유럽이 해양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시기에 이미 해양강국이었던 중국이 스스로 바다를 포기하면서(1433년)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갈리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결국 서양이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된 계기를 15세기 중국의 해상 후퇴서부터 왔다고 서술한다. 15세기부터 해상을 장악하기 시작한 서구가 세계화를 이끌고 결국 산업혁명을 일으켜 1820년을 기준으로 세계 패권을 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에 좀 의문이 드는 것이, 저자 책을 좀 읽어보면 18세기-19세기 중국의 인구수가 치고 늘어나 세계 인구수의 38%씩이나 차지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국과 인도의 GDP를 합치면 세계 총 생산 50%를 차지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만일 해상 후퇴가 세계 패권을 놓친 계기라면 왜 중국은 15세기에 해상 후퇴를 했음에도 19세기 초까지 잘 살았을까? 산업혁명이 세계의 패권을 쥐게 만든 계기인 것은 확실한데, 과연 해양 능력이 산업혁명 발생의 원인이었을까? 해상 후퇴를 하고서도 발전을 거듭한 중국의 사례를 보건대, 해양 능력 그 이상으로 산업혁명에 영향을 끼친 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820년을 다루면서 산업혁명보다는 15세기의 해상수송을 더 중점으로 다룬 것 같아 아쉽다.
1945
여기는 별 할 말이 없다. 우리 세계는 문명으로 가는 길인가, 야만으로 가는 길인가 탐색해보는 장인데, 이럴 수도/저럴 수도 있다 라는 화두를 던져놓고 이야기가 끝난다. 물론 흥미로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시대별 예절을 정리해놓은 책을 소개하는데, ‘당시 예절 규범에서 하지말라는 것이 있으면 그건 이미 그 시대에는 그 행동을 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라며 점점 복잡해지는 예절 규범들을 소개한다. 즉 우리 문명은 야만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저자는 큰 관점에서 완벽한 짜임새를 만들고자 했던 것 같은데, 설령 실제로 그러했을지라도 나는 저자가 책에서 한 이야기가 잘 믿기지가 않는다. 마치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되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관점으로 책을 쓴 것 같다. 물론 그러면서도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을 항상 빼놓지는 않는다. 마치 본인의 관점으로 자를 건 다 잘라놓고서는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해놓은 듯했다. 물론 역사는 지나간 사건들의 흔적만을 보고 유추해나가는 과정인지라 본인의 관점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역사가 이러했다’ 식의 글은 더욱이 믿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300여 페이지 지면에 넣느라 잘려나간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그해, 역사가 바뀌다 표지 이미지 출처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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