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글

서로 격려하고,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모티프가 되는 공간

blueshirt 2020. 1. 4. 10:59

2018.11.22 

생각이 상황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것인지, 상황이 생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 근래 나는 ‘커뮤니티’, ‘공동체’, ‘관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전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마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던가,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지탱하는,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도움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슬픈 일이 있거나, 심적으로 힘들 때면 자주 되뇌곤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굉장히 단순한 논리였다.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있으면, 타인의 도움이 없더라도, 혹은 있다가 없어지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여하튼 살아갈 수 있으니까. 조금은 과한 비유일 수 있겠으나, 외부 라이브러리/패키지 의존성이 없다면 내가 짠 코드는 언제나 잘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봐도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요 근래 저런 생각들로 가려졌던 것들을 조금씩 들춰보는 기분이 든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사람’
내게 ‘공동체’가 가지는 의미는 딱히 크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탱하고 나서야 여유가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곳.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곳이나 크게 의지해서는 안 되는 곳. 언젠가 커뮤니티, 공동체, 동아리, 친구가 사라져서 내 의존성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나. 물론 나는 충분히 이기적이어서 완전히 의지를 안 하는 사람은 못되었으면서, 등을 기댈 정도의 두터운 벽이 될 법하면 더더욱 사라질까 조심했다. 그래서인지 애써 내게 ‘공동체’의 필요성을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근래에 들어 이런 생각의 장막을 걷어내고 있고, 그렇게 생각한 계기는 brunch에서 읽었던 남의 집 프로젝트미란다 줄라이의 인터뷰, 군대에서 어제 끝난 국학기공대회였다.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게 중요해요. 그 프로젝트가 당신 작업의 중심이 아니더라도요. 왜냐하면 당신이 지지받기를 바라는 세계에 당신도 무언가를 해줘야 하니까요. 당신의 작업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먼저 다가올 거라고 기대해선 안돼요. 나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 밖으로 나와서 당신에게 더 좋은 구실을 찾아야 해요. 당신이 뭔가를 보여줄 때 그들의 작업 또한 함께 선보이는 것도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겠죠. 어쩌면 전시회, 해프닝, 밤샘파티, 실험 같은 것들을 조직할 수 있을 거고요. 그래서 스스로 예술가이면서 참가자가 되고, 서로에게 팬이 되며 어쩌면 친구까지 될 수도 있겠죠.”

Miranda July - 알라딘 인터뷰 내용 중 발췌

 

미란다 줄라이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는데, 특히 마지막 문장, ‘서로에게 팬이 되고 친구가 된다.’라는 문장은 이상하리만치 계속 곱씹게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와중 근래 국학기공대회라는 걸 나가게 되었다.(물론 목적은 포상휴가였다.) 국학기공대회는 미란다 줄라이의 마지막 문장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애써 외면했던 ‘공동체’의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역설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10월 중순 부터였나, 그때부터 국학기공이란 걸 했다. 그러니까 이런 걸 했다.(하하) 시작할 때에도, 끝낼 때에도 굉장히 부끄러웠다. 포상휴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작했고, 11월 17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렸던 인사혁신처 주관 국학기공대회에 다녀옴으로써 그 끝을 맺었다.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동작에 의한 부끄럼은 차치하더라도, 국학 기공식 설명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소위 말하는 신체의 에너지, 음과 양, 기의 흐름, 뇌 호흡, 동양 의학과 묘하게 한 다리 걸치고 있는 듯한 설명방식이었다. 세세한 동작을 잡아주실 때에도 ‘틀린 동작을 이렇게 바꾸면 된다.’ 라기보단 저런 설명방식을 따르니 초반에는 특히 힘들었다. ‘공대생 너무 만화’에서 주연이(남자 주인공)가 고통받는 장면이 자주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에 국학기공을 찾아봤는데, 국학기공 창시자가 단월드 창시자였다. 경계심은 심해졌고, 부끄러움과 스트레스가 합쳐져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매번 끝날 때에는 ‘몸 튼튼, 마음 튼튼, 뇌 튼튼’ 이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좁은 다목적실에서 울려 퍼지는 저 구호는 맞은편 생활관, 우리 소대에서 개그 소재가 되었다. 많은 이의 냉소적인 시각 속에서, 본인의 냉소적인 시각을 애써 감춘 채 거진 한 달을 했고, 17일 대회를 다녀왔다.

경찰청 대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십수명이 아니었다. 공직자가 무척 많았고, 학교에서 왔는지 초등학생, 중학생들도 무척 많았다. 중학생 팀의 공연을 보면서 정말 궁금했던 것이 ‘저들은 왜 왔을까’였다. 20명이 넘었다. 저들은 무슨 이유로 여기 와있는 것이지. 나처럼 휴가 포상에, 하루 사회로 나오는 짤막한 외출에 매달려 오진 않았을 텐데.(심지어 연습을 많이 한 듯 굉장히 잘했다.)
내가 냉소적으로 봤던 것들을 자연스럽다는 듯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과정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내게 냉소적인 시각이 생긴 원인으로는 물론 부끄러움과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국학기공을 개그소재로 삼는 분위기에 스스로 편승했던 것도 원인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여전히 나는 뇌호흡, 음양 에너지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저 수많은 사람들, 학생들이 시간을 내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모티프가 된다는 것이 놀랍고 부러웠다. 내 주변 많은 것들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요즘이라 더욱 부러웠다. ‘냉소적이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팬이 되며, 어쩌면 친구까지 될 수도 있겠죠.’라는 미란다 줄라이의 문장을 직접 보는 순간이라 느꼈다. 어쩌면 냉소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공동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 글을 읽을 때에는 ‘커뮤니티’, ‘공동체’ 등에 대해 이만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혹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정의 : 서로 격려하고,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모티프가 되는 공간 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만큼 필요하지 않아도, 동의하지 않아도 18년 11월의 박재연은 저랬구나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장막을 들춰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글을 썼다. 일단은 지금은 작년보다도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고,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진은 시상식 사진. 머리 짧은 태극기 아저씨가 나다. 어깨 조금만 더 필걸


  1. 서울지방경찰청 밥은 무척 맛있었다.
  2. 자우림의 XOXO라는 노래를 자주 듣는데, 그 노래 가사 중 나는 ‘너도 약한 걸 알아. 그러니 내게 기대’라는 문장을 제일 좋아한다. 오늘 글을 쓰면서 제일 많이 들은 노래인 듯.

'잡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탐사, 우주진출  (0) 2020.01.04
보람은 경계선 위에서  (0) 2020.01.04
[11] 군대  (0) 2018.06.03
[10] 필사하기  (0) 2018.05.22
[9] 케이크 만들기  (0) 201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