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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카페는 밤샘 과제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blueshirt 2018. 4. 12. 23:39

4. 카페에서 책 읽기


카페에서 여유롭게 음료 한 잔이랑 가벼운 읽을거리를 읽어보고 싶었다. 책 읽기가 떠올라서 일단 저렇게 메모해두었었는데, 가져가서 읽은 건 BIG ISSUE 잡지 3월호다. 이것도 4월 11일 그러니까 어제 했던 건데, 어째 하루씩 밀려서 적고 있다. 오늘은 오늘의 100가지 중 1가지를 했는데 말이다. 아마 오늘 건 또 내일 적겠지?

4. 카페에서 책 읽기
내게 카페, 그러니까 커피집은 정말 과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집에서 하자니 걸핏하면 웹툰을 보는 나는 나태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 하자니, 학교는 23시 30분이 지나면 버스가 끊겼다. 내가 주로 있는 공학관부터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1시간 30분이니, 과제를 끝냈다고 집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런 내게 카페는 풍부한 카페인과 적당한 시끄러움을 제공하고, 과제를 끝내면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장소였다. 그렇게 1년, 2년을 보내다 처음으로 카페에서 책을 읽어보았다. 아니 잡지를 읽었다. 햇살은 쨍쨍했다. 주문한 밀크티는 크게 달지 않았다. 밀크티 한 잔을 마시면서 BIG ISSUE 3월호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정말 여유롭게 글을 읽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읽은 부분을 다시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깊게 들어오는 글 하나를 발견하고 두 번 정도 다시 읽었다.

3월호 BIG ISSUE는 3월 초 강남 교보문고 근처에서 샀던 것으로 기억난다. 내용도 보지 않고, 지나가다가 표지가 이뻐서 샀다. 3월 초에 샀는데, 휴학하고 나서야 읽게 된 것이 참 웃기다. 아마 표지 보고 '아- 이쁘다. 집에 가서 읽어봐야지' 하고 가방에 넣고, 집에 가서는 '다음에 읽어봐야지-' 하고 꽂아만 놓고 안 읽은 것임이 틀림없다.


3월 호 표지다. 한번 눈에 띄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3월호를 찬찬히 읽으면서, 여러 이야기들이 내 앞을 지나갔지만, 46페이지-49페이지, '지뷜레 바이어, <Colour Green>(1970~1973, 2006)'이라는 송승언 씨의 글이 제일 마음 깊이 들어왔다. 글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한창때의 부모와 닮은 모습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더라도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은 꽤 많이 생길 테고, 사랑이나 상실 따위의 감정도 제법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부모의 젊은 날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법하다. 나만 할 때 엄마 아빠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젊은 날 가졌던 취미를 늙어서까지 유지하는 멋지고 또 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내가 부모의 한창때와 닮아간다.'는 말이 부모님의 한창때를 상상하게 했다. 나의 지금이 부모님의 그때와 비슷했을 거라 생각하니 신기하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 말, 이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엄마와 아빠의 옛 사진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20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몰랐다. 짐을 정리하면서 나온 앨범 사진들 속에는 청자켓을 입고, 친구들과 밝게 웃고 있는 단발 혹은 숏컷의 엄마가 있었다. 정장을 입고, 직장 동료분들과 엄청 크게 웃은 채 사진기를 바라보고 있는 아빠도 있었다. BIG ISSUE - 송승언 씨의 글 첫 문단은 작년 말의 이런 나를 떠오르게 했다. 사진에 담긴 엄마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빠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엄마, 아빠 20대의 아침은 어떻게 시작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노을 지는 저녁에는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바쁜 직장 속에서의 삶도 궁금했고, 주말에는 무엇을 하고 노셨는지도 궁금했다. 무엇을 가장 맛있게 드셨을까. 취미는 무엇이셨을까. 저 문단 이후 이어지는 글은 이런 질문들을 하나하나 물어보는 것처럼, 한 엄마의 자식이 그녀의 옛 녹음테이프를 창고에서 찾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옛날에 취미 삼아 만든 엄마의 노래들을 발견한 아들이 공시디로 음악을 굽고, 우연에 우연을 거쳐 인디음악 앨범으로 나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지뷜레 바이어의 <Colour Green>이라는 앨범이다. 나의 부모님에게도 한창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느낀 그 떨림을 두 페이지 분량의 글이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글은 참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찬찬히 읽을 때면 더욱 그런 것 같다. 과제만을 위한 장소였던 카페에서 그냥 잡지를 읽어본 것도 오랜만이었고,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것은 더더욱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정말 책을 들고 카페에 다시 가봐야겠다. 두꺼운 책은 아직 버거우니까, 얇은 책으로 한 권 챙겨가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