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글

[7] 책은 여러 생각을 떠오르게 만든다.

blueshirt 2018. 4. 18. 11:55

7. 파주출판단지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책 읽기.

파주출판도시의 도서관 지혜의 숲
파주출판도시의 도서관 '지혜의 숲'
(천장이 더 높은 곳이 있는데 깜빡하고 사진을 못 찍었다.)


언젠가 엄마 손에 이끌려 파주출판단지에 온 적이 있었다. '지혜의 숲'이라고 커다란 도서관이 있었는데, 여태 본 도서관 중에서 제일 천장이 높고 그 천장까지 책이 쌓여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나는 천장이 높은 건물을 정말 좋아한다. 머리에 닿지 않고 손을 뻗어도 까마득한 천장이 있는 건물을 좋아하는데, '지혜의 숲'이라는 도서관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최고의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오후에 와서 저녁에 집으로 갔던 나는 그곳에서 자지 못했던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언젠가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고, 온종일 책을 읽어야지. 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 때 혹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얼추 5, 6년이 흐르고, 드디어 왔다. 휴학 신청서를 내고, 군대 가기 전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다. 정오 즈음 파주에 도착해서, 일단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잡고 11시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읽은 책은 동생이 읽으라고 집에서 건네준 '불꽃_HIBANA'라는 책과 익숙한 제목에 도서관에서 고른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는 말이 기억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솔직히 도대체 어떤 내용의 이야기길래 그렇게 대차게 까인 걸까 싶어서 골랐다.

 두 책 모두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다. 책을 쉴새 없이, 한 번도 졸지 않고 읽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불꽃_HIBANA'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같은 저자의 '도쿄백경'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이 없다. '도쿄 백경'은 시골에서 살던 저자가 대도시 도쿄를 맞이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한 수필이다. '불꽃_HIBANA'를 읽으면서, 간결한 문체에 울었다 웃었다 감정이 꽤 동화된 기분을 느꼈는데, 일본어를 공부해서라도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번역가가 정말 잘 번역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책의 저자가 앉아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근래 휴학 신청서를 내면서 했던 고민들이 꽤 많이 적혀있었다. 친구들은 졸업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멈춰있는 기분. 쉽사리 나태해지는 자괴감.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면서도 이것이 그저 나태함의 핑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 나는 아직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자꾸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느껴지는 조급함. 그러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고민보다 자주 하는 돈 걱정. 돈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휴대폰 요금으로 4-5만 원, 술값으로 1-2만 원, 맛집이라고 1-2만 원 쉬이 내버리는 자신. 항간의 아무 근거 없이 '노-오력 해라'라는 메시지와는 다른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위 문제들, 몇가지 나의 고민들에 대해서는 분석적으로 서술했다고 느꼈다. 고민을 직접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해결할 여지는 만들어주는 몇 가지 행동지침들도 있었다. 뭐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희로 쓰여지는 것에 대해 읽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어 들었지만, 내겐 좋은 책이었다.

하루에 책을 1권 이상 읽어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쉬이 잡생각들이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는, 생각만으로도 재밌다-. 라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적어둘걸. 꽤 재밌는 생각들이 많았는데. '기억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좀 후회된다.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방에 TV 대신 책들이 꽂혀있다.)

숙소는 가장 저렴한 방이 1박에 132,000원이었다. 비쌌다. 1인실이 있었으면 했는데, 최소 2인실 방이었다. 숙소의 이름은 '지지향'이라고 하는데,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왜 이리 이곳에서 자고 싶었나 싶었는데, 도서관과 숙소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도서관이 24시간 열려있어, 언제든 책을 읽다가 졸리면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1시까지 있고 싶었는데, 10시 반 즈음부터 졸음을 견딜 수가 없어 11시에 숙소로 올라갔다. 개인적으로 침대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베개도 얕은 베개, 딱딱한 베개를 선호한다. 집에서 수건을 베고 잘 때가 많다. 그래도 여행 온 기분 내고 싶어서 침대방을 골랐는데, 역시나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은 타자를 치고 있어서 졸지 않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 금세 졸 것 같다.

파주출판도시는 참 재밌는 곳이다. 이곳에 와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거나, 유튜브를 본다거나 하지 않고 있다. 사실 간간이 페이스북이나 웹툰이 손에 잡히기는 하는데, 그래도 일상보다는 쉽게 손에 책이 들어온다. 책이 쌓여있는 벽 앞을 유유히 걸으면서 읽을 책을 골라보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른다는 점이 일종의 복권 같아 더 재밌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책은 책장에 꽂혀있으면서 책등만을 보여준다. 맨 앞 페이지 서문도, 역자의 말도 보여줄 수 없고 책 표지도 줄거리의 요약도 볼 수 없다. 대게 책 등에 적힌 책 제목과 책 등의 디자인, 조금 더 관심이 있으면 출판사, 작가, 역자 이름을 보고 고르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책 제목을 보고 고른다. 익숙한 제목,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이면 일단 골라서 서문과 작가의 말 같은 걸 읽어보는데, 그래도 책 내용은 잘 모른 채 고르는 건 같다. 오늘 아침 숙소에서 체크 아웃하고 나와 고른 책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책이다. 에피소드 1 읽다가, 잠깐 나와 이 휴학 글을 쓰고 있다. 잘 고른 것 같다. 일단 에피소드 1 그 졸린 눈으로도 막힘 없이 읽었다. 주인공과 같은 걸음걸이로 책 속의 배경을 걸어 다닌 기분이 들 정도로 재밌었다. 어제, 오늘 읽은 책들은 다시 한번 읽고, 감상문을 적어야겠다. 이번 주 내로 다시 읽고, 감상문을 적고 싶다.

아직 파주출판도시에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 즈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